정치를 축제처럼 즐기는 스웨덴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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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44회 작성일 19-08-06 10:22본문
정치를 축제처럼 즐기는 스웨덴 청년들… 다양성ㆍ공존의 밑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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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19.07.29. 오전 4:43
[스타트업! 젊은 정치] <5> 정치가 축제가 될 때
매년 7월 열리는 ‘알메달렌 정치주간’올해 10만여명 참석
낮엔 가족과 휴양, 저녁엔 정치인들과 활발한 정치 토론 벌여
10대들도‘열린 발언대’참여… 51년 째 민주적 만남의 장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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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왜 왔냐고요? 정치인들이 기후문제를 의제화하도록 고민거리를 던져주려는 거지요. 매일 저녁 각 당의 대표 연설에서 어느 당이 지구온난화 정책을 언급하는지, 언급한다면 어떤 내용인지 유심히 듣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가나 기후문제 전문가의 발언이 아니다. 언뜻 봐도 앳된 스웨덴 10대들의 이야기다. 스웨덴 서부 해안도시 뤼세실(Lysekil)에서 530km가 넘는 거리를 날아온 알렉산더(17)와 스웨덴 각지에서 모인 그의 친구들은 지난 3일 스웨덴 야당이자 중도우파연합에 속하는 자유당의 니암코 사부니(Nyamko Sabuniㆍ50) 신임 당대표의 연설이 끝난 직후 한 자리에 모여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이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젓고,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냐는 물음에도 ‘아니오’로 답하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먼 곳까지 왔을까. 정치인들을 감시하는 일은 사실 10대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안드리아(15ㆍ여)는 답한다. “정치인 중 극소수만이 기후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갖고 있어요. 그조차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10배, 100배는 더 고민해야 우리의 고민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겁니다.” 자신들의 관심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권에 등을 돌리는 대신 이들 10대들은 자신들의 의제가 잊히지 않도록 정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정치가 곧 축제가 되는 나라. 정치인의 연설을 듣기 위해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발길을 옮기는 곳. 스웨덴 남부 고틀란드섬 비스비(Visby)에서 열리는 ‘알메달렌 정치주간(Almedalsveckan)’ 풍경이다. 매해 7월 8일간 열리는 이 행사에는 연평균 수만 명이 모여든다. 그 속에서 이들 10대들은 비스비 곳곳에서 ‘행진’을 하며 기후정책 공론화를 외치고 있었다.
원래 스웨덴 사람들은 자정이 되어야 해가 지는 이 계절을 만끽하려 6월 말 하지(夏至)부터 약 한 달간 이어지는 긴 여름휴가를 1년 내내 손꼽아 기다린다. 겨울이면 오후 2시부터 어둠이 깔리는 지리 조건 탓에 햇살에 목마른 이들은 화창한 날씨를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다. 연중 개회하는 의회도 7월 한 달 동안은 텅 빈다. 관광객이 넘치는 대목을 뒤로한 채 문을 닫는 식당도 적지 않다. 그러나 휴가의 절정에 열리는 알메달렌 정치주간만큼은 예외다. 더러는 가족과, 더러는 친구들과 이 섬을 찾아 휴양을 하다가도 오후 6시가 되면 하나둘씩 알메달렌 호숫가에 모인다. 그리고 미묘한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저녁 7시에 시작하는 기조연설을 더 가까이에서, 편안하게 듣기 위해서다. 아예 두세 시간쯤 일찍 나와 무대와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조금 떨어진 건물 2층 식당에 자리를 잡는 이도 있다. 호숫가를 따라 펼쳐진 잔디에 누워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연설 내용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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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기조연설은 물론 아침부터 기자회견장을 찾는 열혈팬도 있다. 1일 오전 11시 알메달렌 기자회견장을 찾은 어거스트 윈첼 고트버그(19)는 온건보수당(Moderaterna Party) 당대표 울프 크리스트슨(Ulf Kristersson)의 팬이다. 고트버그는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으레 보수당이라고 하면 청년보다 기득권을 위한 정책을 많이 낼 텐데 어떻게 그를 지지하게 됐는지 묻자 “그의 솔직한 모습이 좋다”며 말문을 열었다. “어른들을 위한 정책을 많이 내는 게 사실이지만, 크리스트슨은 청년 스타트업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마약과 폭력 등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세대에 상관없이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가 발의한 마약범죄 관련 법안은 아직 계류 중이지만, 크리스트슨이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이뤄낼 것이라 믿어요.” 고트버그는 마치 대변인이라도 되는 듯 차분히 설명했다. 크리스트슨이 입양한 세 딸의 고민을 통해 젊은이들의 요구를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으며 유력한 총리 후보자로 거론된다는 전망까지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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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메달렌 프레스센터에 따르면, 올해 축제 참가자는 10만여명에 달한다. 축제 기간 항공권과 승선권을 토대로 집계한 방문자 수치다. 매일 저녁 연설에는 적게는 700명에서 많게는 3,000여명이 무대 앞 공원을 메웠다. 사흘을 제외하고는 연일 폭우와 거센 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였지만 참석자들은 대부분 우비를 입거나 아예 비를 맞아 가며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으니 취재 열기도 뜨겁다. 불과 일주일 전에 자유당 대표로 선출된 니암코 사부니는 이날 자신의 첫 번째 과제로 온건보수당과의 연립내각을 꼽았다. 전직 당대표에 비해 보수적인 사부니가 경쟁 정당인 온건보수당 대표 울프 크리스트슨을 총리로 지지하겠다고 밝히자, 현지 언론들은 앞다퉈 질문을 쏟아냈다. 자유당은 온건보수당과 협치를 통해 최근 세를 키우고 있는 극우파를 견제하는 동시에 자유당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한 초석이라는 관측이다.
5일 비스비를 찾은 네오(48)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전을 피해 1995년 이곳에 정착했다. “고틀란드섬에 사는 24년간 정치에 대한 만족도는 꾸준히 높았습니다. 정치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투명하게 공개되고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민이 얼마든지 정치인을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요. 고향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이 같은 공감대 덕분에 유권자들은 정치인을 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 섬을 찾는다. 정치인이 국회 일정을 뒤로한 채 유권자를 만나러 지역구를 찾는 한국과는 상반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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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어떻게 정치축제의 장(場)이 됐을까? 이야기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로프 팔메(Olof Palmeㆍ1927~1986) 당시 교육부장관은 비스비에 여름휴가를 왔다가 그를 알아본 시민들과 호숫가에서 정책 토론을 하게 됐다. 토론은 점차 뜨거워졌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팔메는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트럭 위에 올랐다. 유권자들은 질문하고 팔메는 답했다. 팔메는 이곳에서 74년까지 소속정당인 사회민주당과 주민들의 토론을 이어 갔다. 이후 호숫가 이름을 딴 ‘알메달렌 정치축제’로 불리기 시작했고 91년부터는 의석을 가진 모든 정당이 참여하고 있다. 처음 시작이 그랬듯 알메달렌 호숫가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51년째 민주적 만남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이후 총리에 오른 팔메는 안타깝게도 1986년 스톡홀름 시내에서 괴한에게 총을 맞고 생을 마감했다. 살인사건 공소시효(25년)가 완성되는 2011년까지 용의자를 잡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 했지만 다행히 관련 법이 개정돼 수사가 재개된 상태다. 스톡홀름 시민들은 팔메가 목숨을 잃은 현장을 기억하고 시내 묘지에서 그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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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메달렌 정치주간이 스웨덴인들의 축제로 자리 잡으면서 비스비 곳곳에서는 정치 연설뿐 아니라 3,100여가지 다채로운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골목에서는 외교연구소가 인도와 아시아, 스웨덴에 얽힌 국제문제를 강연하고, 주택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단체도 흰색 천막 아래 부스를 만들어 참여를 독려한다. 광장 앞에서는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전직 축구선수가 자신의 극복기를 털어놓는가 하면 항구에 정박한 커다란 배 위에서는 학생들이 합창을 하기도 한다. 무겁거나 다소 지루한 주제일수록 무료로 제공하는 간식이 풍부하다. 커피와 물, 주스 등 음료는 물론 갓 구운 와플과 신선한 과일을 입구에 진열해 머리 아픈 주제에 쉽게 다가서도록 이끈다. 기업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목 좋은 자리에 홍보관을 차리고 신차 등 자사 제품을 전시해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모든 행사는 무료다. 바다와 공원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장점과 중세도시가 잘 보전된 세계문화유산 도시라는 관광 요소는 휴가와 정치축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관광객에게 강력한 유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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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발언대는 일견 이질적일 것만 같은 ‘정치’와 ‘축제’ 두 단어가 한데 어우러지게 만든다. 스웨덴에서 정치가 축제로 승화하고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한 배경이다. 이처럼 다양한 정체성이 존중받고 공존하는 정치 문화는 의회 구성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국제의회연맹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스웨덴 의회는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48%가 만 45세 이하 의원일 정도로 청ㆍ장년층 비중이 세계적으로 높다. 만 40세 이하 의원 비율도 34%에 달하며, 기준을 만 30세 이하로 낮춰도 여전히 12.3%로 젊은 의원이 넘친다. 30세 이하 의원은 전무하며, 45세 이하 의원도 2.6%로 극소수에 해당하는 한국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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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청년, 청소년의 정치적 영향력마저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그레타 툰베리(16)가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한 ‘기후변화를 위한 금요일 등교 거부운동’은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 확산했다. 툰베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주말에 시위를 했다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해 평일에 등교 거부운동을 펼치게 됐다”고 밝혔다. 학교들은 금요일 결석이 늘자 수업 일정을 조정해 학생들이 학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왔다.
10대들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는 적극적인 조치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10대들의 힘은 셌다.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지던 지난 5월 24일에는 전세계 125개국 1,600개 도시에서 등교 거부운동이 일어났다. 금요일 의회 앞에서 시작된 툰베리의 1인 시위가 전 세계 등교 거부운동으로 확산하자, ‘그레타 툰베리 효과’라 일컬어졌고 툰베리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이 약진한 데에는 기후변화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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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서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관습 덕분이다.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 ‘얀테의 법칙(Jantelov)’이 그것이다. 이런 문화는 정치 영역에도 고스란히 녹아 ‘다양한 정체성의 국회’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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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치 선진국인 스웨덴이라고 해서 모든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스톡홀름에 사는 에밀 길렌버그(23)는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좀처럼 안 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학교에서 배우기 때문에 올로프 팔메 등 유명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현재 나를 대변하는 정치인의 이름을 대라면 아는 사람은 없어요.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정치는 후순위가 되네요.” 하지만 정치무관심자인 에밀에게도 알메달렌 정치축제는 ‘언젠가 한 번쯤 가 보고 싶은 곳’이다. 내년 알메달렌 정치주간은 6월 28일 시작해 7월 5일 끝난다.
고틀란드ㆍ스톡홀름=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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